Insight

03. 인도는 단순히 하나의 나라가 아니다.

limuz 2011. 2. 26. 22:36
인도는 단순히 하나의 나라가 아니다



 
 내 사랑 인디아
 India, My love

오쇼처럼 인도를 심도 있게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철학, 역사, 정치, 문학, 그리고 영적인 차원과 순수하게 감정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인도에 대한 오쇼의 이해는 다차원적이다. 그는 인도에 대해 탁월한 이해를 보여준다. 그의 이해는 언어를 초월하여 진실한 사랑의 영역까지 들어간다. 오쇼는 모든 것의 핵심에 사랑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궁극적인 메시지이다. 그는 사랑을 통해 삶을 발견하고, 경험하고, 맛보라고 말한다.
-프리티쉬 난디(Pritish Nandy), 저널리스트.

1931년 12월 11일부터 1990년 1월 19일까지 이 지구를 방문했던 오쇼는 수정처럼 투명한 통찰력으로 이 중요한 이야기들을 전개한다. 그는 진리의 모든 면을 파헤치면서, 언제부터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잠들어 있던 우리의 의식을 일깨운다. 그는 고대의 성자처럼 우리에게 다가와 깨어 있는 의식으로 미래를 준비하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인도가 밝힌 의식의 횃불이 꺼지기 않게 하라고.
-라구 라이(Raghu Rai), 사진 작가-

오쇼는 결코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물이다. 금세기의 가장 탁월한 인물인 그는 우리 인류를 위해 새로운 세계, 사랑의 길을 통해 우리 자신을 즐기고 되찾을 수 있는 세계를 열어 주었다. 여기, 시대를 관통하는 지혜의 에센스가 있다. 언젠가 죽을 운명인 우리 인간이 불멸을 얻을 수 있는 지혜의 감로수가 여기 있다.
-나라얀(Mr. V. N Narayan, 델리, 힌두스탄 타임스의 편집장

이 빛나는 우화들은 크나 큰 기쁨을 안겨 준다. 이 책을 천천히 읽어라. 사랑으로!
-지트 타일(Jeet Thayil), 저술가, 시인, 아시아 위크(Asiaweek)의 기고가-

세상에 비폭력 정신을 선사한 인도가 그 영적인 전통을 회복할 때가 되었다. [인디아 마이 러브]는 이 시대를 위해 꼭 필요한 기념비적인 가르침이다.
-말리카 사라바이(Mallika Sarabhai), 인도 고전 무용가.

오쇼가 보는 인도.

눈부시게 빛나는 인도, 어둡고 황폐한 인도, 소달구지가 굴러가는 고대의 인도, 눈부시게 발전하는 현대의 인도. 과연 어느 것이 인도인가? 인도는 한 장소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의 개념? 한때 황금의 새처럼 비상하던 나라? 인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수많은 흐름과 지류, 신비주의자, 황제들, 비길 데 없이 훌륭한 장인과 천상의 음악을 들려주는 음악가들. 설령 내가 인도를 안다 해도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인도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어디까지 내 상상력을 잡아늘일 수 있을까?

인도는 하나의 패러독스(paradox)이다. 모순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이다. 만일 논리를 고수한다면 인도를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차원에서 보면 모든 것이 적재적소에 놓여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인도에 1주일을 머문 사람은 책을 한 권 쓸 수 있다. 인도에 한 달을 머문 사람은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인도에 몇 년이나 그 이상을 체류한 사람은 한 단락을 쓰기도 힘들 것이다. 이렇듯 인도는 엄청나게 복잡한 나라이다. 인도의 모순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한편에서 빈곤에 시달리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중산층의 소비자들이 급격하게 등장하고 있다. 인도는 거의 모든 방면에서 훌륭한 재능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두루 퍼져 있는 나태함은 인도의 물질적인 성장을 가로막는 저해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인도는 거대한 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러나 고질적인 카스트 제도, 족벌 체제, 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 등으로 정치는 부패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깊은 곳에서 보면, 이런 병폐의 근본 원인은 업(業)과 환생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이다. 수 천년 동안 이어 내려온 인도의 모순은 이 '환생'이라는 개념을 숙명론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개인과 집단의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핵심을 말하자면, 인도는 특정한 범주에 속하는 어떤 용어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인도는 단순히 하나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도는 신비이다.

인도는 위풍 당당한 반얀(banyan) 나무의 신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대(大) 성당의 기둥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가지를 땅에 뿌리박고 있는 반얀 나무! 또는 아침 이슬처럼 청초하게 떠오르는 연꽃의 신비에 비유될 수 있다. 섬세하면서도 숭고한 연꽃.

인도는 내재적인 동시에 초월적인 현상이다. 어린아이들이 경험하는 깊은 경이감과 놀라움이 살아 있는 곳이다.

인도에 대해 말할 때 오쇼의 말투는 더 부드러워지지만 권위가 흘러 넘친다. 그는 인도의 핵심을 드러낸다. 그는 지리학적인 인도나 역사적인 인도에 관심이 없다. 그는 인도가 가진 내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그래서 히말라야처럼 멀고 높은 곳도 우리의 숨결 마냥 가깝게 느껴진다. 무지개처럼 미묘하면서도 실제적이고 살아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것이 인도에 대한 그의 사랑이다.

오쇼의 독창적이고 예리한 통찰력은 인도의 영적인 전통을 풍성하게 가꾸어 준 깨달은 스승들의 정수(精髓)를 밝혀 준다. 인도의 과거 전체를 보는 그의 자애로운 시각은, 물질적인 진보와 일시적인 성공에 들떠 있는 오늘날의 이 나라에서도 진정한 지혜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의 시각에 의하면 물질적인 목표는 인간의 성장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다. 그러나 그는 현대의 인도가 영원한 영적 탐구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으며, 이것이야말로 인류 문명에 기여한 인도의 독특한 공헌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그는 신부를 찬양하는 신랑처럼 인도를 찬미한다. 부드러운 손길, 그의 손길은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선율과 같다. 그의 시선은 수줍음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신부에게 고정되어 있다. 그는 인도를 광대한 바다, 무한한 다양성을 가진 곳으로 본다. 그는 인도를 스스로 에너지를 창조하는 곳으로 본다. 숨어 있는 꽃과 같은 깨달은 스승들, 이 오래된 땅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준 깨달은 스승들 위에 오쇼는 자신의 영혼의 빛을 비춘다. 인도에 대한 오쇼의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그의 통찰력은 인도의 영적인 면을 깊이 탐구한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지적인 차원에서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는 다양한 차원에 걸친 인도의 진보를 고찰한다. 모든 선입견에서 벗어난 통합적인 의식으로 그는 인도를 직접 파고든다. 그는 인도의 본질을 반영한다. 그는 인도의 의식을 구체적으로 실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써 오쇼는 우리가 인도를 발견하고, 보고, 듣고, 느끼는데 도움이 되도록 풍성한 일화를 사용한다. 다양한 일화와 통찰력을 통해 인도를 조명하면서 오쇼는 각각의 미묘한 뉘앙스와 차이점, 각각의 색채를 드러내 준다. 여기엔 놀랍도록 투명한 이해와 유희성이 깃들어 있다. 그는 인도를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길을 열어 준다.

오쇼는 인도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그는 인도를 알기 때문이다!
-스와미 사티야 베단트(Swami Satya Vedant)-
철학 박사. 오쇼 국제 재단 내, 오쇼 멀티버시티(Osho Multiversity)의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