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04. 진리에 목마른 사람들

limuz 2011. 2. 26. 22:38
진리에 목마른 사람들
  내 사랑 인디아
  India, My love
인도는 단순히 지리학이나 역사에 속하는 나라가 아니다. 인도는 단순히 하나의 민족, 국가, 지구의 일부가 아니다. 인도는 그 이상의 무엇이다. 인도는 하나의 은유이며 시(詩)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너무나 확실하게 느껴지는 그 무엇이다. 인도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에너지로 진동하고 있다.
거의 만 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의식의 궁극적인 정상에 도달했다. 그들의 진동은 아직 살아 있다. 그들의 영향력이 공기 중에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러나 이 불가사의한 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그 무엇,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인도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나라이다. 인도는 단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 진리의 탐구가 그것이다. 인도는 위대한 철학자들을 낳지 못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인도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칸트, 헤겔, 브래들리(Bradley), 버트란트 러셀 같은 인물들을 낳지 못했다. 인도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단 한 명의 철학자도 없었다. 이런 가운데 인도는 진리를 탐구해 왔다!

인도인들의 탐구는 다른 나라에서 행해진 것과 분명히 달랐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진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도인들은 진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진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가? 그대는 진리를 알거나 모르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생각은 불가능하다. 진리에 대한 철학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부질없고 헛된 망상이다. 그것은 장님이 빛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그가 위대한 천재나 논리학자라 해도 아무 소용없다. 빛을 보는 데에는 천재성이나 논리가 필요 없다.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빛은 눈으로 보는 것이지 생각해서 아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아는 것은 가능하지만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인도에는 '철학(philosophy)'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진리의 탐구를 인도에서는 '다르샨(darshan)'이라고 부른다. 이 '다르샨'이라는 말은 '봄(見)'을 의미한다.

철학은 생각을 의미한다. 그리고 생각은 맴을 도는 것과 같다. 계속해서 주변을 맴돌 뿐, 결코 경험에 이르지 못한다.인도는 진리를 알고 진리 자체가 되는데 전력을 기울인 단 하나의 땅이다. 인도는 자신이 가진 재능 전부를 여기에 바쳤다. 인도의 역사 전체를 살펴보아도 단 한 명의 위대한 과학자가 없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없었던 게 아니다. 천재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인도에도 수학자들은 있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 같은 인물은 없었다. 이 나라 전체가 객관적인 연구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 나라에서는 타자(他人)를 아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다.

만년이라는 세월 동안 인도인들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이 탐구를 위해 과학, 기술 발전, 경제적인 부유함 등 모든 것을 희생했다. 가난과 질병, 죽음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탐구를 포기하지 않았다......이것이 어떤 분위기를 창조했다. 사방을 바다처럼 메운 특별한 진동을 창조했다.

조금이라도 명상적인 마음을 갖고 인도에 온 사람은 이 진동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관광객으로 온 사람은 그것을 느낄 수 없다. 그는 폐허가 된 유적들, 궁전, 타즈 마할(Taj Mahal), 사원들, 카주라호(Khajuraho), 히말라야를 보겠지만 진짜 인도는 보지 못할 것이다. 인도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진짜 인도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이 진짜 인도의 진동은 모든 곳에 충만해 있다. 그러나 그는 민감하지 않다. 이 진동을 느낄 만큼 수용적이지 않다. 그는 진짜 인도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인도가 남긴 잔해들, 그 해골을 보려고 온 것이다. 그는 인도의 영혼을 보려고 온 것이 아니다. 그는 사진기로 그 해골들을 찍어서 앨범을 만든다. 그리고 그는 "나는 인도에 갔었다. 나는 인도를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사진기로 담을 수 없는 영적인 면이 있다. 그대가 받아 온 교육, 그대가 받아 온 훈련에 의해서는 그것을 포착할 수 없다.

그대는 어떤 나라를 가든 그 나라 사람들, 그 나라의 역사, 그 나라의 과거를 만날 수 있다. 완벽하게 만날 수 있다. 독일, 이태리, 프랑스,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안된다. 만일 인도를 다른 나라와 똑같은 범주로 생각한다면 그대는 이미 핵심을 놓친 것이다. 그 나라들에는 영적인 오라(aura)가 없다. 그들은 고탐 붓다를 낳지 못했다. 그들은 마하비라, 네미나타(Neminatha), 아디나타(Adinatha)를 낳지 못했다. 그들은 까비르(Kabir), 파리드(Farid), 다두(Dadu) 같은 인물을 낳지 못했다. 물론, 그들은 위대한 과학자와 시인, 예술가들을 낳았다. 그들은 위대한 화가들을 낳았다. 그들은 온갖 재능 있는 사람들을 배출했다. 그러나 신비주의자는 인도의 독점물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신비주의자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이다. 그는 단순히 천재가 아니다. 단순히 위대한 화가이거나 시인이 아니다. 그는 신의 전령(傳令)이다. 그는 신을 초대하는 사람이다. 그는 신이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 준다.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문을 열었다. 그래서 이 나라는 신성한 기운으로 충만하다. 내게 보는 한, 이 기운이 진정한 인도이다. 그러나 이것을 알려면 특별한 마음 상태가 필요하다.

명상할 때, 침묵에 잠겨 들어갈 때, 그대는 진짜 인도가 들어와 그대와 만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그대는 다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진리를 이 가난한 나라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나라는 너무나 가난하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풍요로운 유산을 물려받았다. 눈을 떠서 이 유산을 보는 순간 그대는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아마 이 나라는 다른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오직 의식의 진화에만 깊이 몰두한 유일한 나라일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여러 가지 많은 것들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 나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지향해 왔다. 어떻게 하면 인간의 의식을 신과 만나는 지점까지 진화시키느냐, 어떻게 인간과 신을 더 가깝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단 하나의 지향점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문제였다. 하루나 한 달, 일 년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수 천년에 걸친 문제였다. 따라서 이 나라를 둘러싸고 엄청난 에너지의 장(場)이 창조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에너지가 사방을 덮고 있다. 그대가 준비만 하면 된다.

진리에 목마른 사람들이 누구나 갑자기 인도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동양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록에 나와 있듯이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랬다. 2천 5백 년 전에 피타고라스가 진리를 찾아 인도에 왔다. 예수 그리스도 또한 인도에 왔다.

유사이래, 지구 방방곡곡에서 구도자들이 이 땅을 찾아왔다. 인도는 가난하다. 물질에 관한 한 인도는 줄 것이 없다. 그러나 민감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도는 지상에서 가장 풍요한 땅이다. 이 풍요함은 내면의 풍요함이다. 이 나라는 가난하다. 그러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보물을 그대에게 줄 수 있다